다시생각하는 113주년 노동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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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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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03-04-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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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에 맞설 노동절의 의미
다시 생각하는 113주년 노동절
100여년전 미국의 전체인구는 약 5천만명, 공장 노동자는 850만명이 있었는데 이들은 일주일에 100시간이상을 일하는 열악한 상황이었으며, 소수의 지배자들이 부를 독차지하고 있었다.
파업을 하면 군대와 경찰이 자본가를 대신해 노동자를 탄압하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조직을 결성하기 시작했고 드디어 1886년 5월 1일을 기해 8시간 노동제를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다. 토요일이던 이날의 파업은 평화적으로 진행되었다. 탄압의 빌미를 노리다 허탕을 친 경찰은 일부러 '맥커믹 농기계공장' 습격을 배후조종 하여 이에 항의하는 노동자들에게 발포를 했다.
어린 소녀를 비롯한 6명이 사망하고 5월 3일 대규모 항의집회에서는 다시 경찰의 발포로 200여명이 살해되었는데 이것이 '헤이마키트 사건'이다. 이후 경찰과 자본가는 노조의 힘이 확대되는 것을 두려워하여 노조지도자를 투옥하고 사형시키고 말았다.
1889년 7월 프랑스 혁명 100주년 기념일에 세계 20개국 노조대표자들은 국제적인 노동자대회(제2인터내셔날) 창립대회를 개최하였고 이 대회에서는 노동자 보호, 세계평화, 8시간노동제등을 결의하였다.
아울러 미국노동자들의 위대한 투쟁을 기리고 전세계에 이를 확산시키고자 5월 1일을 노동자들의 날로 할 것을 결정하였다. 이로서 다음해인 1890년부터 매년 5월 1일은 전세계노동자가 단결하는 날이며, 8시간 노동제와 노동자의 권익보호를 위해 연대투쟁하는 날이 된 것이다. 그러나 각국의 메이데이 행사는 온갖 박해를 받았으며, 수많은 희생속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초기에는 전평, 후에 대한노총등 1957년까지 메이데이 행사를 진행하였으나 '공산국가에서도 경축하는 날이므로 반공하는 우리가 기념할수 없다'는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대한노총 창립일인 3월 10일로 변경하였다.
이후 1963년 4월 17일에는 '근로자의날 제정에 관한 법률'(단 한조항만 있는 법률)이 제정됨으로써 유급휴일로 인정되었다.
노총은 90년대 이후 여러차례 청원을 통해 5월 1일로 날짜를 변경해줄 것을 요구하여 지난 94년 3월 9일 위 법의 개정으로 5월 1일이 '근로자의 날'이 되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노총은 '노동절'이라 부르고 정부는 '근로자의 날'이라 부르고 있다.
우리나라 제조업의 노동시간은 50.0시간으로 국제노동기구(ILO)회원국중 7번째로 긴시간이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중에서는 가장 긴시간으로 불명예스런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노동시간단축 재협상이 한창인 지금 참다운 노동절의 의미를 깊이 새겨볼만할 일이다.
'만약 그대가 우리를 처형함으로써 노동운동을 쓸어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렇다면 우리의 목을 가져가라! 가난과 불행과 힘겨운 노동으로 짓밟히고 있는 수백만 노동자의 운동을 없애겠다면 말이다! 그렇다. 당신은 하나의 불꽃을 짓밟아 버릴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의 앞에서, 뒤에서, 사면팔방에서 끊일 줄 모르고 불꽃은 들불처럼 있다. 그렇다. 그것은 들불이다. 어느누구도 이 들불을 끌 수는 없으리라.......'
헤이마키트 사건으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노동운동가 스파이즈의 최후진술 중에서
다시 생각하는 113주년 노동절
100여년전 미국의 전체인구는 약 5천만명, 공장 노동자는 850만명이 있었는데 이들은 일주일에 100시간이상을 일하는 열악한 상황이었으며, 소수의 지배자들이 부를 독차지하고 있었다.
파업을 하면 군대와 경찰이 자본가를 대신해 노동자를 탄압하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조직을 결성하기 시작했고 드디어 1886년 5월 1일을 기해 8시간 노동제를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다. 토요일이던 이날의 파업은 평화적으로 진행되었다. 탄압의 빌미를 노리다 허탕을 친 경찰은 일부러 '맥커믹 농기계공장' 습격을 배후조종 하여 이에 항의하는 노동자들에게 발포를 했다.
어린 소녀를 비롯한 6명이 사망하고 5월 3일 대규모 항의집회에서는 다시 경찰의 발포로 200여명이 살해되었는데 이것이 '헤이마키트 사건'이다. 이후 경찰과 자본가는 노조의 힘이 확대되는 것을 두려워하여 노조지도자를 투옥하고 사형시키고 말았다.
1889년 7월 프랑스 혁명 100주년 기념일에 세계 20개국 노조대표자들은 국제적인 노동자대회(제2인터내셔날) 창립대회를 개최하였고 이 대회에서는 노동자 보호, 세계평화, 8시간노동제등을 결의하였다.
아울러 미국노동자들의 위대한 투쟁을 기리고 전세계에 이를 확산시키고자 5월 1일을 노동자들의 날로 할 것을 결정하였다. 이로서 다음해인 1890년부터 매년 5월 1일은 전세계노동자가 단결하는 날이며, 8시간 노동제와 노동자의 권익보호를 위해 연대투쟁하는 날이 된 것이다. 그러나 각국의 메이데이 행사는 온갖 박해를 받았으며, 수많은 희생속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초기에는 전평, 후에 대한노총등 1957년까지 메이데이 행사를 진행하였으나 '공산국가에서도 경축하는 날이므로 반공하는 우리가 기념할수 없다'는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대한노총 창립일인 3월 10일로 변경하였다.
이후 1963년 4월 17일에는 '근로자의날 제정에 관한 법률'(단 한조항만 있는 법률)이 제정됨으로써 유급휴일로 인정되었다.
노총은 90년대 이후 여러차례 청원을 통해 5월 1일로 날짜를 변경해줄 것을 요구하여 지난 94년 3월 9일 위 법의 개정으로 5월 1일이 '근로자의 날'이 되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노총은 '노동절'이라 부르고 정부는 '근로자의 날'이라 부르고 있다.
우리나라 제조업의 노동시간은 50.0시간으로 국제노동기구(ILO)회원국중 7번째로 긴시간이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중에서는 가장 긴시간으로 불명예스런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노동시간단축 재협상이 한창인 지금 참다운 노동절의 의미를 깊이 새겨볼만할 일이다.
'만약 그대가 우리를 처형함으로써 노동운동을 쓸어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렇다면 우리의 목을 가져가라! 가난과 불행과 힘겨운 노동으로 짓밟히고 있는 수백만 노동자의 운동을 없애겠다면 말이다! 그렇다. 당신은 하나의 불꽃을 짓밟아 버릴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의 앞에서, 뒤에서, 사면팔방에서 끊일 줄 모르고 불꽃은 들불처럼 있다. 그렇다. 그것은 들불이다. 어느누구도 이 들불을 끌 수는 없으리라.......'
헤이마키트 사건으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노동운동가 스파이즈의 최후진술 중에서